2025년(8호-)

⟪한국고대근동학 노트⟫ 제8호를 펴내며
_편집위원장 김구원

한국 고대근동학의 저변 확대와 진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발간되는 ⟪한국고대근동학 노트⟫ 제8호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 뵙게 되었다. 이번 호에서도 고대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문명의 다양한 주제를 다룬 총 6편의 글이 수록되었다. 특히 이삭 박사께서 고대 이스라엘 인장을 주제로 새롭게 연재에 참여해주셔서, 그에 대한 깊이 있고 흥미로운 논의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제임스 그린버그의 책 ⟪레위기 어톤먼트의 새 조망: 키페르의 의미와 목적 재고⟫에 대한 서평을 기고해주신 성기문 박사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번 호에 실린 각 글의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김구원 박사는 함무라비 법전이 단순한 성문 실정법이 아니라 왕의 판결을 정리한 사례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함무라비 법전이 실제 법정에서 법문으로 인용되지 않았고, 함무라비 법전 내에 포괄성이 부족하며, 특정 사례들을 조금 추상화해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함무라비 법전은 왕의 통치 원칙과 정의를 선전하는 도구로 활용되었고, 아울러 왕권을 정당화하고 후대에 본보기를 제공하기 위한 문서로 제작되었다. 이런 점에서 함무라비 법전은 단순한 법률집이 아니라 왕의 통치 철학을 담은 기념비적 성격이 강함을 논의하고 있다.


유성환 박사는 기존의 연재를 잠시 멈추고 특별 기고를 보내왔다. 아켄아텐의 종교개혁을 다루는 이 글은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내용을 조금 수정한 것으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켄아텐(아멘호텝 4세)은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로서, 고대 이집트에서 전례 없는 급진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한 인물이다. 그는 전통적인 다신교적 신앙을 버리고 태양원반 아텐(Aten)을 유일한 최고 신으로 숭배하는 아텐 신앙(Atenism)을 도입했다.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그는 수도를 기존의 테베에서 아케트아텐(Akhetaten)(현대의 아마르나)으로 이전하고, 예술과 건축 양식에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하며 수세기 동안 유지되던 전통과 단절했다. 그러나 아켄아텐이 사망한 후 그의 종교개혁은 급격히 폐기되었으며, 전통적인 다신교 체제가 즉시 복원되었다. 기존 신들의 신전이 재개방되고 사제들이 다시 권력을 되찾았으며, 아켄아텐이 건립한 아텐 신앙 관련 기념물들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심지어 그의 이름조차 왕의 연대기에서 삭제되었으며, 후대 통치자들은 그의 개혁을 완전히 무시하려 했다.

유성환 박사에 따르면, 아켄아텐의 개혁에 대한 학자들의 다양한 분석과 평가들이 존재한다. 일부 학자들은 그의 아텐 숭배를 인류 최초의 일신교적 신앙 사례로 간주하며, 그를 유일신 개념의 선구자로 평가한다. 반면 그의 개혁을 종교적 신념이 아닌 정치적 동기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예를 들어, 그는 강력한 아문(Amun) 신관단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더욱 중앙집권화하려 했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또한 아켄아텐의 종교개혁은 현대 사상가들에게도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되었다. 특히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아켄아텐의 일신교적 개념이 모세(Moses)와 유대교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모세가 아텐 신앙을 이집트에서 히브리 전통으로 옮긴 사제였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윤성덕 박사는 지혜 문헌 연재를 계속한다. 이번 호에는 논쟁 문학과 지혜문학의 요소를 갖춘 ⟨니싸바와 밀⟩이라는 ‘바빌리’(=바빌론)의 작품을 분석한다. 니싸바는 원래 글쓰기와 풍요의 여신이었지만 후대에는 곡식의 여신으로 남게 되었으며, 본문에서는 밀과 논쟁하는 역할을 한다. 작품의 구조는 찬양과 기도로 시작하여, 밀이 니싸바에게 풍요의 질서를 어지럽혔다고 불평하는 장면으로 전개된다. 논쟁이 진행되면서 신들의 개입과 세계의 질서가 다시 정립되는 과정이 묘사되며, 마지막은 니싸바에 대한 찬양으로 마무리된다. 본문에서 다양한 하위 신들의 역할이 강조되며, 기도와 불평을 통해 신과 인간이 소통하는 방식이 드러난다.


특히 윤성덕 박사는 이 작품에 포함된 신적 존재에 대한 흥미로운 개념들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좋은 것’이라는 여성적 존재, 신들의 권위를 상징하는 ‘광채’,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을 가진 신 개념, 그리고 니싸바를 ‘한 분이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묘사하는 표현들이 주목된다. 또한 니싸바 여신의 신격이 확대되면서 천체의 빛과 점성술, 폭풍우까지 지배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런 내용은 바빌론 문학이 단순한 신화적 이야기에서 벗어나, 신의 권능과 세계 질서를 논의하는 신학적 ·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원준 박사도 지난 호에 이어 ⟨아트라하시스 이야기⟩를 분석한다. 이번 연재에서는 세 번째 토판인 홍수 이야기를 번역하고 해설한다. 엔키로부터 예지몽을 받은 아트라하시스가 신과 인간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하는 과정을 상세히 서술한다. 꿈을 통해 신과 인간이 소통하는 방식은 고대근동뿐 아니라 구약성경에서도 발견되며, 특히 벽(갈대벽)이 신의 계시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등장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방주의 건조 명령과 설계가 제시되는데, 방주는 기존의 상식과 달리 정사각형 혹은 원형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방주의 의미는 단순한 탈출 수단이 아니라 물질적 소유를 버리고 새로운 생명을 선택하는 종교적 상징성을 지닌다.


이후 본문에서는 아트라하시스가 방주를 짓고 다양한 동물을 실으며, 방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회적 계층을 초월한 연대 작업이 이루어진 점이 강조된다. 본격적인 홍수의 징조가 나타났을 때 방주의 문을 닫는 행위가 단수형과 복수형으로 구별되는데, 이를 통해 방주에 함께 타지는 않았지만 건설을 도운 사람들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주원준 박사는 기존의 길가메시 서사나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와 비교해 신과 인간의 관계, 홍수의 의미, 방주의 형태에 관한 다양한 통찰을 제공하며, 홍수 신화가 단순한 재앙 서사가 아니라 고대 종교와 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중요한 문헌임을 보여준다.

이번에 새롭게 합류한 이삭 박사는 앞으로 이어질 연재에서 고대 이스라엘 지역의 항아리 인장들을 다룬다. 고대의 저장 항아리는 기름, 와인, 곡물 등을 보관하고 운반하는 필수적인 용기로, 유다 왕국에서는 이러한 항아리 손잡이에 인장을 찍어 경제적 · 행정적 체계를 운영했다. 이 연구는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등장한 다양한 유형의 인장들—엄지손가락 인장, 라멜렉(lmlk) 인장, 동심원 인장, 로제트(rosette) 인장, 모짜(mwṣh) 인장, 사자(lion) 인장, 예후드(yhwd) 인장, 예루살렘(yršlm) 인장—의 특징과 변화를 추적한다. 초기에는 단순한 상징이 사용되었지만 점차 왕실 소유 표시와 도시명을 포함하는 등 정교한 행정 도구로 발전했다. 이러한 인장들은 신앗시리아,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헬레니즘 제국 등의 지배하에서 변화하며, 유다 지역의 정치적 · 경제적 상황을 반영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이 연구는 문헌 기록이 부족한 시대의 유다 왕국 및 예후드 속주의 경제 · 행정 체계 및 권력 구조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성기문 박사는 제임스 그린버그의 저서를 비평적으로 소개한다. 성기문 박사에 따르면, 고대 이스라엘과 기독교 역사 속에서 키페르(kipper)는 전통적으로 ‘유화하다(propitiate)’ 또는 ‘속죄하다(expiate)’로 번역돼왔으며, 이후에는 ‘정화하다(purify)’라는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면서 학계에서 논쟁이 지속되었다. 그린버그는 기존의 다양한 해석을 ‘오염과 정화’, ‘혼합’ 그리고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범주로 체계적으로 정리했으며, 특히 제이콥 밀그롬(Jacob Milgrom)의 오염 및 정화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는 성소가 죄로 인해 오염되는 것이 아니라,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요소라고 보며, 키페르는 성소의 정화가 아닌 관계 회복의 역할을 한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성기문 박사는 그린버그의 연구가 현대 키페르 해석에 대한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

차례
 

▪ ⟪한국고대근동학 노트⟫ 제8호를 펴내며 — 편집위원장 김구원 · 3


[ 특별 연재 ]

▪ 함무라비 법전 이야기 ①: 함무라비 법전은 실정법이 아니었다 — 김구원 · 9▪ 아켄아텐의 ‘종교개혁’과 그 여파 — 유성환 · 25

▪ 바빌리 사람들의 지혜 ⑧: 니싸바와 밀 — 윤성덕 · 62
▪ 아트라하시스 이야기 ⑧ — 주원준 · 79
▪ 고대 남부 레반트 유다 왕국/예후드 속주의 행정 체계 사례: 저장 항아리 인장들의 발전사 ① — 이삭 · 99


[ 고대근동학 리뷰 ]
▪ 제의적 키페르 동사 의미 연구의 대전환 — 성기문 · 111
제임스 그린버그, ⟪레위기 어톤먼트의 새 조망: 키페르의 의미와 목적 재고⟫ 서평


학회 신간 안내 · 119
학회 가입 안내 ·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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